♣ = W T = ♣/스트레스 클리닉

춘곤증 호소하는 고3 수험생·40대 여성 작가

浮萍草 2013. 4. 10. 07:00
    “봄날, 나른하고 집중력 뚝뚝 … 마음이 불안해요”
    
    Q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입니다. 
    의대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2학년 때는 물론 지난 겨울방학 때 정말 많이 노력했습니다. 
    입시를 치러야 하는 3학년이 됐으니 새로운 각오로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나른하기만 하고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춘곤증 탓인지 나도 모르게 도서실에서 쓰러져 자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의지가 약했나 싶어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하고, 이러다 다 망치는 건 아닌가 불안하기도 합니다. 
    어떡해야 할까요.
    Q 40대 미혼 여성입니다. 
    강의하며 글 쓰는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마감해야 할 책이 있어 노력하고 있으나 뜻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집중력이 뚝 떨어져 겨울 내내 긴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전 나름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입니다. 
    봄도 됐으니 심기일전해 다시 글을 써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집중이 되지 않고 마음만 불안합니다. 
    다 그만둘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듭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A 봄은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계절입니다. 회사는 새로운 한 해를 계획하자며 봄에 워크숍을 하고 개인 역시 봄이 오면 흐트러졌던 마음을 다잡으며 여러 계획을 세우지요. 그런데 이 시작의 계절이 영 만만치 않습니다. 사람을 한없이 나른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네, 바로 춘곤증 말입니다. 춘곤증이란 봄철에 몸이 나른해지며 쉽게 피로를 느끼는 현상을 일컫습니다. 잔뜩 계획표를 벽에 붙여 놓고는 책상 앞에서 꾸벅꾸벅 조는 자녀를 보고 있노라면 부모 입에서 “너 그런 정신력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해, 정신 차려”란 말이 절로 나옵니다.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엔 새롭고 멋진 계획을 세우지만 하루 이틀 그 스케줄에서 빗나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러곤 자신의 나태함과 의지력 부족을 스스로 꾸짖습니다. “난 역시 안돼,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할까, 아까운 3월 다 날렸네, 4월부터 다시 잘 해봐야지”라고요. 봄·여름·가을, 그리고 겨울이 세상사의 순서라면 스트레스 의학 측면에선 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마지막이 봄이 아닌가 싶습니다. 봄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마무리라는 얘기입니다. 이번 겨울 참 추웠죠. 추운 날씨는 사람을 긴장시킵니다. 지금이야 따뜻한 집에서 지낼 수 있고 두꺼운 오리털 파카로 한기를 막아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추위는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무서운 대상이었습니다. 먹을 것을 찾기도 어렵고 생존을 위해 전투를 해야 하는 계절이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연말연시의 낭만과는 차이가 있었죠. 그런 기억이 우리 감성 시스템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날씨가 추워지면 전투 수준으로 우리의 감성 톤을 한껏 예민하게 올려 놓습니다. 불안이나 불면을 안고 있는 환자 중 상당수가 겨울이 되면 “딱히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는데 증상이 악화됐다”며 제 클리닉을 방문 합니다. 추위가 무의식 속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잠 깨워 불안감을 증가시킨 겁니다. 벌써 4월입니다. 올봄이 지나가면 내년까지 기다려야 또다시 봄이 오겠지요. 봄은 나른한 이완의 계절입니다. 추운 겨울 움츠러들고 경직됐던 감성을 녹이는 계절입니다. 조물주가 날씨를 통해 우리에게 이완 훈련을 시켜주는 계절이죠. 느린 이완 속에서 삶의 감성 에너지는 충전됩니다. 봄은 앞 계절에 쌓였던 스트레스 덩어리를 풀고 다가오는 새 시즌을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야구로 치면 선발 투수가 아닌 마무리 투수인 거죠. 고3 학생이 나른해지는 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추운 날씨에 열심히 공부하며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사실 학창시절 공부가 좋아서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감성 노동은 서비스업 종사자에게만 있는 게 아닙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바로 감성 노동이고, 그 심리적 스트레스는 뇌에 쌓입니다. 그걸 털어 내는 게 스트레스 관리입니다. 마음을 느리게 이완시키는 것이 최상의 솔루션(해법)이고요. 그렇기에 봄은 내 마음을 충전할 수 있는 최고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죠. 사연 주신 학생, 공부하느라 힘들었죠. 새로운 시작을 위해 너무 긴장하지 말고 봄의 나른함을 최대한 즐기세요. 지나친 통제로 감성이 지치면 오히려 효율이 떨어집니다. 전 무한경쟁이란 말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어찌됐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가 창조성과 도전의식입니다. 창조성은 감성 시스템이 제공합니다. 도전의식은 얼핏 강한 의지를 통해 얻어지는 것 같지만 의지력만으로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삶의 가치라는 에너지가 끊임없이 전달될 때 얻어집니다. 삶의 가치 또한 감성 시스템이 제공하는 에너지입니다. 감성이 지쳐 있으면 창조성과 도전의식이 메말라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따뜻한 봄 햇살과 나른한 기분, 그리고 포근히 내려앉는 잠을 최대한 향유하세요. 이러면 안 되는데, 나태해지면 안 되는데 하지 말고 봄의 기운에 몸을 맡겨 보세요. 억지로 자신을 재촉하고 채찍질하는 것보다 훨씬 자연스러우면서도 강력한 삶의 동기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우리가 열심히 사는 이유 중엔 이렇게 아름다운 봄날을 즐기기 위한 것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봄의 따뜻함이 방해물로 느껴진다면 슬픈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연 주신 여성분도 봄을 즐기십시오. 물론 일할 때 완벽함은 중요한 요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완전함에 대한 갈망과 환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현실에선 완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완전에 대한 강박은 불안한 마음의 한 표현입니다. 자신을 너그럽게 대하지 못하고 계속 다그치는 것이죠. “더 완벽해야 해, 지금에 만족하면 안 돼”라면서요. 봄은 심기일전해서 분발하는 계절이 아니라 심기일전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힐링하는 계절입니다. 당신은 지금 완벽함이 아니라 대충 사는 여유가 절실합니다. 좋은 글은 여유가 가져다 주는 감성적 창조력에서 더 빛을 발할 겁니다. 물론 나른함을 마냥 즐기기엔 불안할 겁니다. 이대로 완전히 나태해져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무능력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를 느낄 수 있습니다. 현대인의 슬픔은 이 따뜻한 여유마저 불안으로 반응하는 완전에 대한 강박적 중독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에게 봄의 나른함을 즐기는 한 방법으로 하루 10분 정도 사색하며 걷기를 권합니다. 키워드는 하늘·사람·날씨입니다. 먼저 하늘을 봅니다. “아, 오늘 화창하게 파란 하늘이구나”.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을 봅니다. “저 사람은 왜 우울해 보일까, 저 사람은 너무 바빠 보여, 화사하게 웃는 저 사람 보기 좋다”라고 품평도 한번 해보십시오. 그리고 날씨를 느껴봅니다. “어제보다 날씨가 더 따뜻해졌네”라고요. 네, 참 한가한 이야기죠. 그런데 이 한가함이 잔뜩 긴장해서 지친 우리 뇌의 회전 속도를 이완시켜 감성 시스템이 다시 작동하게 합니다. 마음의 충전은 느린 여유로움에서 찾아옵니다. 올해의 첫 그리고 마지막 봄을 즐겨봅시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조언보다 훨씬 낫습니다. 비용도 안 들잖아요.
    Joinsmsn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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