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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무엇이 환상이고 무엇이 현실인가

浮萍草 2013. 4. 10. 07:00
    내 맘껏 얼마든 바꿀 수 있다면 환상, 아니면 현실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들의 배신’(1928). [위키피디아]
    힌두교도들은 현실이 마하비시누 신의 꿈
    이라고 믿는다
    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이미지들의 배신(La trahison des images)’이 라는 작품에서 큰 파이프 그림 바로 아래에‘Ceci n est pas une pipe(이건 파이프 가 아니다)’라고 써 놓았다. 분명히 파이프 같이 생겼는데 왜 아니라고 할까? 물론 그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화판 위에 적절히 퍼져 있는 유화 물감들을 우리 눈과 뇌가 ‘파이프’라고 해석할 뿐 이다. 마그리트는 물질적 현실과 우리의 지각적 해석을 혼돈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현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우선 단순하게 ‘현실=물질’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성공회 주교이자 철학자였던 조지 버클리가 이미 지적했듯 우리 모든 경험 은 항상 지각을 통해 이루어진다. 물질적 파이프는 결국 그 파이프에서 반사된 광자들이 망막과 시각 피질의 신경 세포들을 자극해 이루어지는 뇌의 해석일 뿐이다. 버클리는 극단적으로 ‘지각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라고까지 주장 했지만 어차피 모든 현실이 지각의 결과물일 경우 적어도 물질적 파이프만 현실로 인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비슷한 예로 영화 매트릭스의 유명한 한 장면을 기억해 보자. 모피우스는 주인공 니오에게 파란 약과 빨간 약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파란 약을 먹으면 지금같이 편한 세상에서 맛있는 것을 먹으며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다 늙어갈 수 있다. 하지만 빨간 약을 택하면 지금까지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이 거짓이고,무엇이 진정한 현실인지 알게 될 거라며…. ㆍ파란 약이냐, 빨간 약이냐매트릭스 딜레마
    매트릭스 영화를 끝까지 본 대부분의 사람은 진정한 현실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현실이 아니면 어때.아무리 허위라도 가짜 스테이크의 육질을 내 혀가 느끼면 되는 게 아닐까’라는 버클리식 생각으로 파란 약을 선택할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다시 말해 ‘현실은 나의 오감으로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주장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한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1596~1650).서양 근대 철
    학을 출발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키피디아]
    매트릭스 영화를 끝까지 본 대부분의 사람은 진정한 현실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현실이 아니면 어때. 아무리 허위라도 가짜 스테이크의 육질을 내 혀가 느끼면 되는 게 아닐까’ 라는 버클리식 생각으로 파란 약을 선택할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다시 말해‘현실은 나의 오감으로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현실=나의 지각’이라는 가설을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자. 만약 내가 느끼는 모든 것들이 바로 현실이라면 다른 누구도 지각할 수 없는 나만의 꿈과 환상들마저 현실로 인정해야 할까? 그러면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망상은? 아무래도 현실에 대해 약간 다른 정의를 해야 할 것 같다. 현실로 인정되려면 대부분의 정상인들이 비슷한 상황에서 공통적으로 느끼 거나 지각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검정 의자는 다른 모든 사람도 지각할 수 있어서 현실 이지만 만약 내 눈에만 그 검정 의자 위에서 멋지게 강남스타일 춤을 추는 침팬지가 보인다면 정신과 의사와 상담해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고로 ‘현실=대부분 사람들의 공통적 지각’이라는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그러나 공통적 지각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에드문트 후설과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객관적이고 자주적인 지각은 현실적 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지각은 목적과 목표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같은 도끼라도 ‘선녀와 나무꾼’의 주인공과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에겐 각각 다르게 보인다는 것 이다. 버클리와 후설을 따르자면 결국 현실은 개개인의 독특한 지각과 의도에 따라 매번 달라질 수 있는 주관적 현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온 김에 한발 더 나가 유아론(solipsism) 같은 막장 드라마식 현실 론까지 가 볼 수도 있다.
    이 이론은 ‘내게 지각되지 않는 것들에 실체가 없는 게 아니다. 우주의 유일한 현실은 나의 상상뿐’이라는 이론이다. 그렇게 되면 버락 오바마, 중앙SUNDAY, 은하수,레미제라블,4대 강 이 모든 것들은 내 머리 안에만 존재하는 환상이며 ‘현실=나’다. 유아론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긴 불가능하다. 그 아무리 치명적인 논리적 모순을 제시하는 사람도 어차피 유아론자의 상상 중 하나일 테니…. 비슷하게 우리는 ‘배꼽주의’ 식의 현실론과는 이성적 토론을 할 수 없다. 필립 헨리 고스(Philip Henry Gosse)는"1857 Omphalos(그리스어로‘배꼽’)"라는 책에서 ‘왜 아담이 배꼽을 가졌을까’라고 묻는다. 아담은 엄마의 배에서 태어나지 않았는데도 배꼽이 있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배꼽이 없는 비정상적 해부학 구조를 가졌다는 말은 히브리어 타낙(Tanakh 성경)에 없다. 그 의미는 야훼신은 아담을 마치‘엄마라는 존재의 과거를 의미하는’ 탯줄과 배꼽을 포함한 완벽한 상태로 창조했다는 것이다. 비슷하게 우주는 기원전 4004년 10월 23일, 수천만 년 과거의 역사를 담은 듯한 지질학적 증거와 공룡의 화석을 포함한 ‘완성된’ 상태로 만들어졌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왜 하필 6000년 전일까? 어차피 우주가 위조된 과거의 기록을 포함한 ‘완성품’으로 만들어졌다면 6000년 전이 아니라 지난 주 목요일에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아니 물리학적으로 가장 짧은 플랑크 시간인 5.3910610-44초 전에 이미 지금 우리가 지각하고 기억할 수 있는 바로 이 현실 그 자체로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마치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위조된 기억이 심어진 상태로 제작된 로봇들이 자신들이 과거가 있는 인간이라 착각하고 살 듯이 말이다. 결국 지각과 기억만으로 현실을 정의하다 보면 논리적 모순과 이성적 토론이 불가능한 패러독스들에 빠지게 된다. 그럼 현실을 지각에서 분리시켜 볼 수는 없을까? 환상과 현실의 가장 핵심적인 논리적 차이는 무엇일까? 이제 데카르트가 등장할 때다. 오후까지 늦잠 자기로 유명했던 데카르트는 스웨덴 여왕의 개인 교사가 된 후 매일 새벽 5시에 철학 수업을 하다 결국 폐렴으로 죽었다는-게으른 나로서 꼭 믿고 싶은-전설이 있다. 그는 1619년 11월 11일 ‘우리가 진정 믿을 수 있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한다. 물질적 파이프, 파이프의 그림, 검정 의자, 춤추는 원숭이, 아담의 배꼽, 공룡의 화석…. 이 모든 것들은 아주 교활한 악마가 만들어 낸 환상일 수 있다. 적어도 절대로 환상이 아니라는 논리적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우주의 모든 것이 환상이라 해도, 적어도 단 하나의 무언가는 현실이다. 바로 ‘이 모든 것이 환상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나’는 확실히 현실일 것이다. ㆍ현실은 '나' 없는 우주, 즉 '현실=우주-나'
    데카르트는 ‘cogito ergo sum’ 즉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기반으로 외부현실을 증명하려 했지만 미안하게도 그건 좀 무리였던 것 같다. 우리가 증명할 수 있는 건 생각 그 자체가 존재한다는 것이지, 그게 반드시 나의 생각일 필요는 없다. 힌두교도들은 현실이 마하비시누 신의 꿈이라고 믿는다. 그 꿈엔 만물의 모든 물체·정신·기억·지각들이 포함되어 있고, ‘나의 생각’ 역시 그 꿈에 속해 있다. 결국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가 아니고 ‘생각난다. 고로 현실엔 무언가가 생각한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비슷하게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보르헤스의‘원형의 폐허들(Las Ruinas Circulares)’이란 단편에서 주인공은 불에 타 죽는 순간 뜻밖에 아픔을 느끼지 못하며 자신이 결국 누군가 다른 이의 꿈 또는 시뮬레이션이라는 걸 알게 된다. 무엇이 환상이고 무엇이 현실인가? 누가 꿈속의 나비고 누가 현실의 장자일까? 어떻게 보면 현실과 환상의 가장 큰 차이는 현실은 나에게 저항한다는 점이다. 현실의 의자는 내 엉덩이 무게에 저항하기 때문에 내가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지만,환각적 의자에 앉기란 불가능하다. 환상은 내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지만 현실은 내가 원하는 변화에 저항한다. 그래서 현실을 변경하려면 항상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된다:현실엔 공짜가 없다. 그리고 환상과 착각은 내가 더 이상 믿지 않으면 사라지지만 현실은 나의 믿음과 관계없이 현실이다. 내가 없어도 현실은 계속 존재하지만 나의 환상은 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고로 ‘현실=나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는 가설 아래 우리는 현실을 ‘내가 없는 우주,바로 현실=우주-나’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개개인의 지각과 의도로부터 독립시키는 순간 우리는 드디어 현실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응용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이성과 과학 위주의 현실은 결코 아름답거나 포근하지 않다. 아니, 매우 차갑고 비인간적이다. 신의 꿈으로 만들어진 현실! 얼마나 웅장하고 미적인가! 모든 현실이 결국 나의 상상이라면 얼마나 신날까! 내가 바라보고 있어야만 그 아름다운 장미가 존재 한다면 이 또 얼마나 시적인가! 하지만 이런 아름답고 시적인 현실은 우리의 동경은 만족시킬 수 있더라도,현실 그 자체를 예측하거나 바꾸어 놓기에는 너무 주관 적이다. 그래서 모피우스가 니오에게 파란 약과 빨간 약을 권했던 것처럼 나는 회색 비행기와 무지개색 비행기를 권해보고 싶다. 무지개색 비행기는 시적, 종교적, 예술적, 막장 드라마식 현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멋진 비행기다. 그 비행기의 파일럿들은 카리스마가 있으며 무지개 비행기의 원리를 누구나 다 이해하기 쉽고 설득력 있게 설명해 준다. 반면 회색 비행기는 못생기고 우울하다. 그리고 아직 여기저기 수리 중인 흔적까지 보인다. 거기다 파일럿들은 그다지 친절해 보이지도 않고, 자꾸 수식과 확률을 가지고 이해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설명하려 한다. 단, 그 회색 비행기는 철저히 항공역학 이론과 전기전자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만약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은 어느 비행기를 타고 데카르트가 살던 프랑스로 떠나실까요? 당신이 사랑하는 가족들의 목숨을 어느 비행기에 맡기실까요?
    Sunday.joins Vol 306         김대식 KAIST교수 dskim@ee.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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