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수호하며 죄 벌하는 무리의 우두머리
| ▲ 봉선군모천지우도. |
낮에도 밤에도 느낄 수 있는 눈과 귀가 있었다.
나쁜 짓을 하면 자신에게 들킨다고 경고했다.
인도로 불전을 구하러가는 현장 법사를 수행하는 무리 가운데 우두머리격인 원숭이가 그랬다.
손오공이라는 이 원숭이는 근두운 대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머리를 옥죄는 띠 대신 헬멧을 썼고 늘어나는 여의봉 대신 쌍절곤을
휘둘렀다.
머털도사가 머리카락을 뽑아 도술을 부리는 것처럼 털을 뽑아 신통력을 부렸고 약자를 도왔다.
명나라 때 오승은이 썼다는 ‘서유기’를 각색한 ‘날아라 슈퍼보드’ 얘기다.
어째서 원숭이가 신통방통한 능력을 가졌을까. 두말 하면 입 아프다.
지혜롭고 총명하기 때문이다.
동작도 재빠르다.
나무 탈 땐 마치 나비처럼 가볍게 난다.
그래서 원숭이를 ‘잔나비’라고 부르기도 한다.
‘날쌔다’라는 뜻의 동사 ‘재다’와 ‘원숭이’라는 중세 우리말 ‘납’을 합친 말이다.
뿐만 아니라 용맹하기까지 한 동물이다.
그래서인지 불교에서는 부처님 전생이기도 했다.
500마리 원숭이들이 굶주림으로 고통 받을 때 원숭이왕은 임금 궁전으로 들어가 과일을 먹도록 명령했다.
이를 알아챈 임금이 노발대발 해 모두 죽이려 하자 원숭이 왕은 “원숭이들을 용서하고 대신 내가 아침상 반찬이 되겠다”고 했다.
임금은 “네 고귀한 보시정신은 히말라야산보다 더 높다”고 감탄하며 눈물을 흘렸다.
‘육도집경’ 얘기이며 500마리 원숭이는 부처님 제자 500비구라고 한다.
비슷한 설화도 있다. 화난 임금을 피해 달아나던 원숭이 무리가 강을 만나 안절부절 못할 때였다.
원숭이왕은 긴 팔로 강 건너 나뭇가지를 잡고 무리에게 자신을 밟고 강을 건너게 했다.
제 몸을 돌보지 않고 무리의 안전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에 감화한 임금은 성으로 돌아와 백성을 평화롭게 다스렸다 한다.
효심도 만만치 않다. 사냥꾼이 쳐 놓은 그물을 찢자 무리가 포위망을 벗어났다.
그 때 새끼를 등에 업은 늙은 암컷 원숭이가 서두르다가 발을 헛디뎌 깊은 구덩이로 빠지고 말았다.
사냥꾼이 뒤쫓고 있음에도 원숭이 왕 어머니였던 암컷을 구하기 위해 왕은 꼬리를 늘여 어머니의 목숨을 건진다.
이와 같은 까닭에 불교 문화권에서는 원숭이가 자주 등장한다. 양산 통도사 벽화 ‘봉선군모천지우도’도 빼놓을 수 없다.
‘서유기’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다.
이 벽화는 면류관을 쓴 인물이 의자에 앉아 있고 좌우에 무장을 한 인물들이 호위하고 있다.
기둥 뒤에는 3명의 인물이 커튼 뒤에서 무장들을 보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한 인물은 면류관을 쓴 사람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벽화는 ‘서유기’ 87회를 묘사하고 있으며 이야기는 이렇다.
은무산 요괴를 물리치고 나무꾼을 구해준 현장 법사 일행이 천축 변방에 속한 봉선군에 당도했다.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는 법사를 구한다는 방을 붙이는 이를 만났고 봉선군이 몇 년 째 가뭄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현장 일행은 손오공이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다며 관원을 만났고,오공은 비를 내리고자 천궁에 올라갔다.
오공은 하늘에 바치는 제물을 뒤엎어 개에게 먹이고 거룩한 제삿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어 옥황상제를 모독했다는 전후사정
을 듣는다.
이에 오공은 옥황상제를 설득해 봉선군에 비가 내리게 한다.
무릎을 꿇은 인물이 바로 오공이다.
☞ 법보신문 Vol 1119 ☜ ■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草浮 印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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