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삼국유사이야기

21. 시들지 않는 연꽃

浮萍草 2013. 7. 19. 07:00
    더러운 물 속에서 맑고 향기로운 법향 피워내는 불교의 꽃
    고구려 벽화 백제 왕릉에도 불교 영향 연꽃 그림 남아
    불보살 연화좌 앉는 이유는 풍진세상에도 청정하기 때문

    사불산 대숭사 선원 전경.법화경을 독송하던 스님이 입적해 장사를 지내자 그 무덤 위에서 연꽃이 피어났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흙 속에서 피어나도 더럽혀지지 않고 언제나 깨끗한 꽃,그것이 연꽃이다. 정법을 통해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과 보살의 모습을 연꽃에 비유하여 설한 경전도 있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 그것인데 ‘법화경’ 혹은 ‘연경’이라고도 한다. ‘법화경’에서 말했다. “선법(善法)을 배우는 보살도가 세간법(世間法)에 물들지 않는 것은 연꽃이 물속에 있으면서 땅으로부터 솟아오르는 것과 같다.” 보살은 세상에 살지만 세간법에 물들지 않는다. 연 꽃과도 같이 ‘문수사리정율경’에서는 말했다. “사람의 마음은 본시 청정하다. 비록 더러운 곳에 처하여도 험이 없다. 연꽃이 더러운 티끌에 의하여 더렵혀지지 않는 것과 같이.” ‘아함경’ 중의 ‘청백련화유경(淸白蓮花喩經)’에는 이렇게 말했다. “청련화, 홍련화, 적련화, 백련화가 물에서 나서 물에서 자라고 물 위에 나와도 물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여래는 세간에서 나고 세간에서 크고 세간의 행을 뛰어 나와서 세간의 법에 집착하지 않는다.” 진흙 속에 나서도 물들지 않는 꽃 연꽃은 향기롭고 청정하며 부드러우며 아름답다. 이처럼 ‘섭대승론’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연꽃에는 네 가지 덕이 있다. 그리하여 연꽃은 불교의 꽃이 되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에도 백제의 왕릉에도 가야의 고분에도 연꽃은 등장했다. 고구려 장천1호분 벽화인 예불도(禮佛圖)에는 커다란 연꽃 그림이 그려져 있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 목침(木枕)에는 연화화생(蓮花化生)을 보여주는 그림이 있다. 고령의 고아동벽화고분에 보이는 10여개의 연화문과 합천군 다라리 옥전고분군에서 확인되는 연화문은 가야불교의 흔적이다. 모든 불보살은 거의 연화대좌에 안주한다. 연화대좌는 불보살의 상좌(常座)다. 힘든 국토에 있으면서도 세상 풍진 여의고 청정하여 신력(神力)이 자제함을 나타낸다. 불상의 대좌가 연화대좌로 되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여러 설화에도 연화대가 등장한다. 정성으로 염불하던 여종 욱면(郁面)이 몸을 솟구쳐 집 대들보를 뚫고 날아갔다. 서쪽 교외로 가던 그는 유해를 버리고 부처의 몸으로 변해 연화대(蓮花臺)에 앉아서 큰 광명을 내쏘면서 천천히 서쪽의 극락세계로 왕생했다. 음악소리가 하늘에서 그치지 않는 중에. 욱면은 비록 종의 신분이었지만,지극 정성으로 염불한 공덕으로 연화좌에 앉아서 서방정토 로 왕생했다. 욱면이 앉았던 연화좌는 신분의 굴레도 벗어 던지고 현실의 고통도 벗어난 아름다운 자리였다. 수십 년 동안 아미타불을 염송하며 서방정토(西方淨土)를 구하던 포천산(布川山)의 다섯 비구가 서방으로 왕생할 때도 각기 연화대 에 앉아 하늘을 날아 서쪽으로 갔다. 염불하던 욱면과 다섯 비구는 서방정토로 왕생할 때 이처럼 연화대좌에 앉아서 서쪽으로 향해갔다. 현신성도(現身成道)한 달달박박과 노힐부득도 연화대좌에 앉아 있었다. 노힐부득은 미륵존상이 되어 연화대에 앉아 있었고 달달박박은 무량수불이 되어 마주앉았다가 구름을 타고 가버렸다. 이는 경덕왕 16년(757)에 창건한 백월산남사(白月山南寺)의 창건연기설화다. 사불산(四佛山) 대승사(大乘寺)는 진평왕 9년(587)에 세운 절이다. 사방에 불상을 새긴 돌이 하늘로부터 떨어졌다는 산꼭대기의 그 바위 곁에 지은 이 절에는 ‘법화경’을 외우는 승려가 살았다. 그 승려가 죽어 장사지냈더니 그 무덤 위에서 연꽃이 피어났다고 한다. ‘법화경’을 외우던 승려가 묻힌 무덤 위에 피어난 연꽃,그것은 ‘법화경’을 외운 공덕이었고 영험이었던 셈이다. 죽어서도 자신의 무덤에 연꽃 한 송이 피울 수 있는 법력은 아름답다. 문수 형상에 푸른연꽃 있고 경전에도 묘법연화경 있어
    불교는 세상 밖에 없음을 연꽃의 비유 통해 깨우쳐

    사불산 백련사(白蓮寺)라는 절도 연꽃과 관련이 있다. 원효가 이곳에 주석하면서 ‘법화경’을 강의하자 흰 연꽃이 도량 속에서 솟아났다. 이로 해서 절 이름을 백련사라고 했다. 이것이 그곳 산중 사람들이 서로 전하는 백련사의 유래였다. 원효의 ‘법화경’ 강설은 연꽃을 피워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던 것이다. 처렴상정(處染常淨), 물든 세속에 살아도 언제나 맑고 깨끗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런 사람은 연꽃을 피울 수 있다. 우리들 삶이 꽃처럼 피어난다면, 우리도 꽃을 피우는 것이다. 보천(寶川)과 효명(孝明) 두 태자는 오대산에서 수행할 때 푸른 연꽃이 피어난 곳을 택하여 암자를 짓고 수행했다. 두 태자가 산속에 이르니 땅 위에 문득 푸른 연꽃이 피었다. 형인 보천이 암자를 짓고 머물러 살면서 이곳을 보천암(寶川庵)이라고 했다. 동북쪽을 향하여 6백여 보를 가자 북쪽 대의 남쪽 기슭에 또한 푸른 연꽃이 핀 곳이 있었다. 아우 효명도 또한 이곳에 암자를 짓고 머물렀다. 연꽃이 피어난 곳은 길지(吉地)였다. 이렇게 두 태자는 길지에 암자를 세우고 부지런히 업을 닦았다. 오대산의 진여원(眞如院)에는 날마다 문수보살이 36종의 형상으로 나타났는데,두 태자는 매번 차를 달여 공양했다. 문수보살의 36종의 형상 중에는 푸른 연꽃 모양도 있었다고 한다. 푸른 연꽃이 피어나는 곳은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연꽃은 진흙 속에 뿌리박고 피어난다. 그러기에 진흙탕 같은 이 세상도 연꽃을 피워낼 좋은 터전이 된다. 원성왕(元聖王, 785~798) 때의 고승 연회(緣會)는 일찍이 영취산(靈鷲山) 영취사(靈鷲寺) 용장전(龍藏殿)에 숨어 살았다. 그는 ‘연경(蓮經)’을 읽어 보현보살(普賢菩薩)의 관행법(觀行法)을 닦았다. 정원의 연못에는 언제나 연꽃 두 세 떨기가 피어 있어 사철 시들지 않았다. 연꽃을 피워내기도 어려운데 그 꽃이 사철 시들지 않기란 더욱 어려운 일. 그러나 연회는 정원의 연못에 연꽃을 피웠고 그 꽃은 사시사철 시들지 않았다. 이는 그가 항상 ‘연경’을 읽은 영험이었고, 법력(法力)의 상징이었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은 묘법(妙法)을 연꽃에 비유한 경이다. 이 경을 연꽃의 경,즉 ‘연경(蓮經)’으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원성왕(785~798)은 그 상서롭고 기이한 소문을 듣고 연회를 국사(國師)에 봉하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스님은 암자를 버리고 도망했다. 서쪽 고개를 넘어가니 밭을 갈고 있던 한 노인이 말했다. “스님께서는 어디로 가십니까?” “나라에서 저를 관작으로 구속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피해 가는 길입니다.” “이곳에서 팔 일이지 수고스럽게도 멀리 가서 팔려고 합니까? 스님이야말로 이름 팔기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하겠습니다.” 연회는 그 노인이 자기를 업신여기는 줄로 알았다. 몇 리를 더 가다가 시냇가에서 한 노파를 만났는데, 그가 물었다. “스님은 어디로 가십니까?” 스님은 먼저와 같이 대답했다. 노파가 말했다. “앞에서 사람을 만났습니까?” “한 노인이 나를 너무나 업신여겨 불쾌한 기분으로 지나쳐 왔습니다.” 노파가 말했다. “그분이 문수대성(文殊大聖)인데 그분 말씀을 듣지 않았으니 어찌하겠습니까?” 연회는 이 말을 듣고 급히 노인에게로 되돌아가 머리를 숙이고 사과하였다. “어찌 성인의 말씀을 듣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시냇가의 그 노파는 누구입니까?” “그는 변재천녀(辯才天女)다.” 말을 마친 노인은 숨어버렸다. 연회가 암자로 돌아가니 조금 후에 왕의 사자가 왔다. 연회는 진작 받아야 될 것임을 알고 대궐로 가니 왕은 그를 국사(國師)에 봉했다. 밭가는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난 문수보살은 연회를 나무랐다. 스님이야말로 이름 팔기를 싫어하지 않는 것 같다고. 연회는 멀리 피해가던 발길을 돌려 대궐로 향했다. 연꽃은 맑은 물에서 피는 꽃이 아니다. 세속에서 피는 꽃이 연꽃이다. 불법은 세상 밖의 가르침이 아니다.
    김상현 교수
    세상을 벗어나 저 멀리에 있지 않고 바로 여기 세속의 일상 속에 있을 뿐이다. 피해서 도망가던 연회가 암자로 다시 돌아와 대궐로 갔던 뜻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더러운 물속에서 피어난 연꽃, 그러나 그 꽃은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세상에 살아도 세속에 물들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연꽃처럼 아름다운 사람이다. 원효는 말했다. 연꽃은 더러운 물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원만히 향기롭고 조촐하여 온갖 아름다움을 두루 갖춘 것이다. 그것은 ‘법화경’에서 말한 불승(佛乘)은 탁한 번뇌를 벗어나고 생사의 번뇌를 떠나 온갖 덕이 원만하고 미묘한 데에 비유한 것이다.” ‘유마경’에는 “화중생연화(火中生蓮花) 시가위희유(是可謂稀有”라는 구절이 있다. 불 속에서 연꽃이 자라기란 매우 있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일연은 진평왕 때의 혜공과 혜숙을 한 쌍의 귀중한 불속의 연꽃이라고 찬양하기도 했다. 불길 속에서 피는 연꽃이 되기란 어렵고 드문 일이지만,연꽃이 일깨워주는 교훈 되새기며 살 필요는 있다.
    Beopbo Vol 1172         김상현 교수 sanghyun@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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