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한국의 기도도량

8. 청도 운문사 사리암

浮萍草 2013. 3. 21. 07:00
    눈꽃처럼 날리는 벚꽃 향연에 번뇌도 낙화처럼 지다
    층암절벽 위 뿌리내린 도량 천태각 나반존자 영험 서려
    평일이었지만 사리암 기도객은 적지 않았다. 천태각 옆 사리굴에서도 나반존자 기도전각 관음전에도 빈 자린 많지 않았다.
    솜사탕이 뽀송뽀송 길을 수놓았다. 달콤했다. 운문댐 근처로 접어들어 운문호 옆 굽이굽이 난 도로를 따라 청도 호거산 운문사 사리암으로 향하는 길은 벚꽃 천지였다. 운문사 주차장에서 운문사 입구도 마찬가지였다. 4월 봄볕을 타고 꽃비를 흩뿌렸다. 나반존자 기도도량 사리암을 찾아온 마음도 분홍 꽃비처럼 봄바람에 흩날렸다. 사리암은 운문사에서 걸어 1시간 거리다. 신도로 등록한 객만 사리암에 이르는 길이 허락됐다. 이 일대 생태계를 지키고자 한 운문사 노력이었다. 21년간 자연휴식년제를 실시하도록 해 자연에 깃든 생명들을 함부로 대하는 이들을 경계해왔다. 그 결과 운문사가 위치한 운문산, 가지산 2만6000㎢ 일대에 1860여종 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 보고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환경부로부터 생태경관보존지역 핵심보존구역으로 지정받았다. 1년 더 연장했다. 올해도 자연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이들은 발길 금지다.
    암자로 오르는 길목서 본 사리암td>

    사리암 입구를 가리키는 표지석이 발걸음을 붙든다. 사리암(邪離庵). 간사할 사(邪)와 떠날 리(離)가 서로 기댄 암자다. 삿된 마음의 터럭 하나 허락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사리암을 오르거나 내려오는 객 모두 표지석 앞에서 합장 3배다. 일주문인 셈이다. 세속 번뇌 망상을 말끔히 씻고 지극한 신심 하나 마음에 담으란 가르침이다. 3배로 봄바람에 나풀거리던 마음을 다잡았다.

    길 양 옆엔 돌탑들이 버티고 섰다. 작은 돌들이 얼마나 절묘하게 서로를 기대야하는지 모를 일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돌탑들이 서 있었는지 알 길 없다. 사리암 나반존자에게 치성 드린 마음들이 얼마나 간절한지 셈할 수도 없다. 예부터 무너지지 않고 버틴 돌탑의 견고함에서 사리암 오르내린 절절함을 가늠할 따름이다. 가파른 오르막에서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는 노보살과 마주했다.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이뤄준다는 사리암 나반존자이니 굽은 등에 얹혀 있던 속세 걱정은 덜었으리라. 사리암에 물품을 올려 보내는 삭도 근처에 다다르자 호거산에 안긴 도량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리암은 층암절벽에 뿌리 내렸다. 사리암 주차장서 계단을 오른 지 30분이 좀 못돼 깔끔하게 조성된 약수터를 만났다. 동행한 객들이 “이제 다 왔다”고 한다. 감로수는 마른 목을 달랬고, 이현우씨가 쓴 시는 그나마 남은 망상을 털어냈다. “아스라이 높은 듯한 그곳 님 향한 꼬불꼬불 돌계단 산허리 감은 용구름 운무 1008개 돌계단을 고개 숙여 하심으로 오르라네 나반존자님의 향기 속에 인연 맺은 중생들 님 계신 천태각 24돌계단을 끈 놓고 오라하네.”(‘사리암 가는 길’ 전문) 나반존자 독송소리가 들려왔다. 시계는 오후 2시20분을 가리켰다. 동행이 “2시에 입재한 기도”랬다. “(…상략…) 중생들 찾는 소리 하나 하나 응하시어 사바세계 구석구석 거룩한 몸 나투실새 어떤 사람 정성들여 공양하고 발원하면 자재하신 신력으로 살피시고 거두시어 구하는 바 다 이루고 원하는 바 원만이라(…하략…).” 나반존자를 기리는 글(讚)이자 발원문이다. 왜 나반존자에게 기도를 드릴까. 사리암 사리굴 위에 천태각(天台閣)이 자리했다. 독성각이라고도 하는데 1845년 신파대사가 건립한 뒤 나반존자상을 모셨다. 나반존자 후면엔 1851년에 봉안한 독성탱화와 1965년 경봉 스님이 점안한 산신탱화가 함께 있다. 천태각 밑 비석은 금호 스님이 세운 중수비다. 나반존자란 부처님 열반 뒤 미륵불이 출현하기 전까지 중생을 제도하고자 원력을 세운 분이다. 천태산 위에서 홀로 선정 닦으며 열반에 들지 않고 미륵불을 기다리는 존재다. 해서 ‘독성(獨聖)’이라 불리기도 한다. 나반존자란 명칭은 석가모니 10대 제자나 500 나한 이름 속엔 보이지 않는다. 허나 한국불교에서 나반존자는 말세 복밭이다. 복 주는 아라한의 한 사람으로 믿고 있으며 18 나한 중 빈두로존자(賓頭盧尊者)로도 보고 있다. 우리나라 사찰 나반존자 모습은 하얀 눈썹을 길게 드리우고 미소를 띠고 있다.
    호거산 자락에서 40년 넘게 지내온 운문사 주지 일진 스님은 아라한 준말인 나한이 응진(應眞)이라고 설명했다. “진실에 응한다”는 뜻이라 했다. “아라한과 증득은 진실에 응한 경지”라고 했다. 대승불교에선 곧 성불이자 견성이라 했다. “사리암 나반존자에게 기도드리는 마음에 개인의 복만 가득하면 삿됨과 같다”라는 말로 들렸다. 스님은 간절한 원력은 물론 나반존자란 거울에 ‘자기’를 비추는 게 기도랬다. 자기만 잘 살고 1등 하길 바라는 마음을 경계했다. 상생하고 화합하며 살 수 있는 큰 원력이 필요하다 말했다. 일진 스님이 귀가 솔깃한 일화를 꺼냈다. 운문사 오백전 나한 개금을 할 때였다. 나한 한 분 한 분 정성스레 새 옷을 입히는데 한 분이 모자랐다. 알고 보니 사리암 천태각 나반존자가 나머지 한 분이셨다. 당시 원주스님이 나반존자 개금을 간절히 원했는데 마침 사리암 신도 꿈에 나반존자가 나타났다. 한 할아버지가 옷을 해달라고 했단다. 그래서 천태각 나반존자는 신도 한 명이 단독으로 새 옷을 시주했다. 영험담은 이어졌다. 동국대 이사장 정련 스님이 부산 내원정사 불사를 진행 중일 때 일이다. 수차례 상황을 설명해도 시청은 요지부동이었다. 스님은 기도에 의지했다. 사리암에 머물며 일심으로 기도했다. 공양과 화장실 가는 시간 외엔 오로지 기도로 보냈다. 어느 날 공양주 보살이 스님 마지를 올린 밥상을 들고 처소로 향하던 길이었다. 사리굴 옆을 지나던 때 돌이 떨어졌고, 보살은 그 돌을 밥상 위에 올려놨다. 마침 그 날 사리암에 불사 허가가 나왔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기도 회향일이었다. 오계로 청정함 지키고 기도 간절함 하나만 담고 올라야
    운문사 입구를 장엄한 벚꽃길.

    조선 고종황제가 심열로 고생하던 중 청우 스님이 사리암에서 100일 기도를 주관했는데 꿈에 선인이 나타나 머리에 침을 꽂아 깨끗이 나았다는 효험담도 전해져 온다. 일진 스님은 “돌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기도가 이뤄진다는 맹목적 신심이 전해왔다”고 했다. ‘맹목적’이란 단어가 와 닿았다. 절대 신심이자 굳은 믿음인 게다. 나반존자는 까다롭고 엄격하다고 했다. 기도를 드릴 땐 반드시 오계를 철저히 지킨 뒤 기도를 드리곤 했단다. 삿됨 하나 없는 곳에 깃드는 게 ‘맹목적’신심 아닐까. 스님은 사리암을 찾는 기도객들이 많을수록 세상이 어렵게 돌아가는 것 같아 안타까워했다. 허나 “어려울 때 기도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도 복”이라고 위안했다. 사리암에 얽힌 얘기도 삿됨을 멀리한다. 운문사 사리암은 본래 사리굴로 불렀다. 운문사 4굴 중 하나다. 4굴은 동쪽 사리굴, 서쪽 화방굴, 남쪽 호암굴, 북쪽 묵방굴이다. 사리암은 930년 보양선사가 창건하고, 1845년 효원 스님이 중창했다. 1977년 비구니 혜은 스님이 원주로 부임해 1980년 3층 요사를 신축했다. 관음전과 자인실, 정랑은 1983년 개축했다. 사리암 천태각 아래 사리굴이 있는데, 옛날 이곳에선 쌀이 나왔다고 한다. 한 사람이 머물면 한 사람의 쌀이, 두 사람이 살면 두 사람 쌀이 나왔다. 하루는 더 많은 쌀을 나오게 하려고 욕심을 부려 구멍을 넓힌 뒤부터는 쌀이 나오지 않고 물이 나왔다는 전설이 전한다. 천태각 나반존자가 굽어보는 관음전이 기도전각이다.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는데 평일에도 기도객들이 적지 않다. 어림잡아도 전각 밖 신발이 40여개가 넘는다. 사리굴도 마찬가지다. 산신각을 참배하고 관음전에 들어가자 적멸보궁에서만 보던 전각 풍경이 펼쳐졌다. 법당 뒤편에 관음보살이 있고 천태각 쪽 벽면에 또 따른 불단이 있었다. 천태각 나반존자를 우러러 볼 수 있도록 벽은 유리창이었다. 대중 모두 나반존자에게 수없이 절을 올리며 “나반존자” 독송을 하고 있었다.
    운문사 오백전 나한.
    원주스님은 출타 중이었다. 대중에게 깐깐하기로 소문난 원주스님. 일진 스님은 다른 얘기를 전했다. 원주스님은 누더기 장삼을 입고 신도와 스님 화장실 청소를 묵묵히 도맡는다고 했다. 사리암을 찾은 기도객들에게 친절히 말을 건네진 않아도 기도 외 소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도록 하는 배려다. 불친절하단 오해가 들려 일진 스님이 살갑게 대해달란 말을 할 때 원주스님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기도하러 온 분은 밀어내도 기도하고 오라고 해도 기도하지 않는 분은 오지 않습니다.” 사리암 원주스님 답다. 기도 중에는 천태각을 참배할 수 없다. 오후 기도가 끝난 뒤 나반존자에게 봄날 뛰노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합장했다. “하심하며 살겠노라.” 사리암. 기지국도 일부러 설치하지 않아 휴대폰이 긴잠에 빠졌다. 오롯이 진정만 갖고 기도에 매달리라는 법문이다. 산등성이를 타고 봄바람이 인다. 천태각 아래 천리향 한 그루가 신심 머금은 향기를 봄바람에 싣는다. 나반존자는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삿됨 없는 향기가 천리를 넘으리라.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Beopbo Vol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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