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대구는 어디로 갔을까
개체 수 급감해 어획량 제한… 오랜 남획에 온난화로 타격 입어
대항해 시대엔 저장식으로 각광… 북미漁場의 청교도 美독립 이끌어
영국선 복원 위해 식재료도 바꿔… '지속 가능한 어업' 가늠할 시금석
 | ▲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 거제도와 마산,진해를 끼고 있는 진해만(灣)에 겨울이 오면 알을 낳기 위해 찬물을 찾아온 대구가 지천으로 잡혔다.
설 차례상에는 어김없이 살짝 말렸다가 쪄낸 대구가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자리를 잡았다.
워낙 덩치가 커서 대구만으로도 차례상이 풍성해 보여 좋았다.
그런 대구가 한때 종적을 감췄다.
설이 다가와도 어머니는 대구를 살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했던가.
요즘 4인 기준 차례상 구입 비용은 평균 30만원 정도라고 한다.
2000년대 초 진해만에서 대구 한 마리가 20만~30만원을 호가했다.
처음으로 제사상에 토막 대구가 올랐다.
대구가 사라진 것은 사람 때문이었다.
크기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잡다 보니 씨가 말랐다.
대구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숱한 노력이 필요했다.
어민들은 몸길이가 45㎝보다 작은 어린 대구는 잡지 않았다.
치어(雉魚) 방류 사업도 30여년 했다.
치어 방류를 하는 1월에는 대부분 어선이 조업을 하지 않았다.
다시 차례상에 대구를 통째로 올릴 수 있게 됐다.
대구 어획량 감소는 전 지구적인 문제이다.
캐나다는 1992년 뉴펀들랜드주(州) 앞바다 그랜드 뱅크스 해역에서의 대구 조업을 금지했다.
미국은 1994년부터 매사추세츠주의 조지스 뱅크스 해역에서 가혹할 정도의 어획량 할당제를 실시하고 있다.
모두 한때 전 세계에서 가장 대구가 많이 잡히던 해역이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지금 그곳에도 대구가 돌아왔을까.
안타깝게도 대구는 좀처럼 수가 불어나지 않았다.
미국 메인만 연구소의 앤드루 퍼싱 박사는 지난달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그 이유를 밝혀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메인만의 수온이 급격히 오르면서 대구 생존율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1984~2004년 메인만의 수온(水溫)은 연간 섭씨 0.03도씩 올랐다.
전 세계 바닷물의 평균온도 상승의 3배나 됐다.
그런데 2004~2013년 수온 상승은 전 세계 평균의 무려 7배로 치솟았다.
20세기 이후 이만큼 급속한 수온 상승을 보인 바다는 전 세계에서 불과 0.03%밖에 없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수온 상승은 대구 치어의 먹잇감인 작은 물고기를 사라지게 했다.
또 대구 치어는 수온이 높아지자 예전보다 일찍 찬물을 찾아 먼바다로 나갔다.
당장 천적의 표적이 됐다.
수가 늘래야 늘 수가 없는 상황이다.
수온 상승의 효과를 생각하지 않고 어획량만 할당하다 보니,
대구를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얼마 남지 않은 대구를 합법적으로 없애는 역효과를 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결국 인간은 오랜 남획(濫獲)에다 지구온난화까지 일으켜 대구에 이중의 고통을 안겨주고 있었던 것이다.
 |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
대구는 단순한 물고기가 아니다.
미국의 작가 마크 쿨란스키가 1997년 발표한 책 '대구'에 '세계를 바꾼 물고기의 일대기'란 부제를 붙였을 정도이다.
바이킹이 바다를 주름잡은 배경에는 말린 대구라는 최적의 선상 식품이 있었다.
바이킹을 이어 바스크족(族)은 소금에 절인 대구 시장을 장악했다.
염장(鹽藏) 대구는 장거리 항해의 필수 식품이었다.
바스크족은 아메리카 대륙으로까지 대구 어장(漁場)을 확장했다.
콜럼버스보다 먼저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다.
1497년 영국의 지원을 받은 이탈리아 탐험가 조반니 카보토가 바스크족이 숨겨둔 캐나다 뉴펀들랜드와 대구 어장을 발견했다.
영국의 종교 박해를 피해 바다를 건넌 청교도들은 대구를 팔아 부자가 될 꿈을 갖고 북아메리카 동부해안 뉴잉글랜드 지역에 정착했다.
유럽의 대항해 시대와 미국의 독립은 수많은 대구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셈이다.
인류는 뒤늦게나마 대구의 공을 알아챘다.
이제 대구를 되살리기 위해 어업을 중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식성까지 바꾸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영국인이 사랑하는 음식 '피시 앤드 칩스(fish and chips)'는 밀가루 반죽을 입혀 튀긴 대구살에 감자튀김을 곁들인 것이다.
2006년 이후 영국이 북해에서 대구 어획량을 엄격하게 제한하자 피시 앤드 칩스에 대구 대신 다른 생선을 넣자는 소비자 운동이 일어났다.
요즘 피시 앤드 칩스에는 대구 대신 성대 같은 다른 값싼 흰살 생선이 들어간다.
20세기 초 피시 앤드 칩스는 저렴한 가격으로 하층민을 먹여 살렸다.
당시 영국의 전국튀김장수연맹이"다른 어떤 업계보다 빈민층의 굶주림과 폭동을 막는 역할을 했다"고 성명을 발표할 정도였다.
이제 피시 앤드 칩스는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다행히 영국인의 눈물겨운 노력이 결실을 보고 있다.
영국 과학자들은 지난 4월 '네이처 기후변화'지에 5년 안에 북해의 대구 개체 수가 지속 가능한 어업이 가능한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는 가만히 두면 30년까지 산다. 죽을 때까지 자라 1m를 훌쩍 넘기기 일쑤다.
20세기 초만 해도 사람 키만 한 대구가 잡혔다.
한국과 미국,영국 사람이 한데 모여 그 옛날 크기의 대구로 만든 음식을 나눠 먹을 날이 올 수 있을까.
☞ ☜ ■ 이영완 조선일보 산업부 차장 ywlee@chosun.com
草浮 印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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